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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령향교는 조선 성종 4년(1473)에 관학산 밑에 처음 지었는데, 광해군(재위1608~1623) 때 동쪽 으로 옮겼다가 헌종 3년(1837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현유를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향교의 배치는 내삼문을 중심으로 전면의 낮은 곳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후면의 높은 곳에 문묘(文廟) 공간
인 대성전과 동, 서무가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 도 문화재자료 제119호)
 
경북 김천시 개령면 동부동에 위치한 감문산 계림사는 신라 아도화상의 창건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의 사적은 알 수 없고 다만 사중에 전래되는 감주계림사개건기 또는 계림사 사적기
(1954년 현판 필사)등이 중요 사적으로 있을 뿐이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민간에 전해지는 계림사 일대의 지형은 호형이므로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계림사를 건립하였다고 하였다.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절의 건립 또는 괘불의 조성에도 향인 또는 향청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물론 이 괘불은 같은 지역의 쌍룡사로부터 옮겨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일단 그 보관장소가 계림사라는 것이 주목된다. 현재 그 괘불은 직지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것은 향인들이 스스로 절의 산내에서는 묘를 개설치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즉 묘를 쓰면 동리의 우물이 변하므로 동리 사람들이 서로 감시하여 밀장을 금하고 있다는 말이다. 근세 계림사의 중건은 순조 4년(1840) 여러 계인이 중심이 되어 대웅전을 비롯하여 요사 즉 방랑과 공루를 확정하고 향연가등을 건립하였다.
 
빗내농악이 전승되고 있는 빗내마을은 삼한시대 감문국에 속했던 곳으로, 넓은 개령들을 앞에 두고 뒤에는 감문산성의 성터가 있고 군사를 동원할 때 나팔을 불어 신호했다는 취적봉이란 산이 있다. 빗내마을에는 옛감문국의 "나랏제사"와 풍년을 비는 "빗신제"가 혼합한 채동제 형태로 전승되어 동제(음력 정월 6일)때는 풍물놀이와 무당의 굿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행해졌다.

이들 행사가 혼합되어 진굿(진풀이)의 농악놀이로 발전하였다. 전국 농악놀이의 대부분이"농사굿"인데 반하여 이곳 빗내농악은 "진굿"으로 가락이 강렬하고 가락의 굿판이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모두 12가락(질굿.문굿.마당굿.반죽굿.도드레기.영풍굿.허허굿.기러기굿.판굿.채굿. 진굿.지신굿)으로 구성되었고, 이 12가락은 긴 것과 짧은 것의 119마치로 세분된다. 빗내농악은 1961년부터 마을 무대를 벗어나 전국민속 예술경연대회 등 전국의 넓은 무대로 진출하여 대통령상을 비롯한 수많은 각종 상을 수상하여 빗내농악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있다.
   
서부동에서 서쪽으로 마을 뒤의 호두산아래 소릿길 고개너머에 6개의 탑편이 있다. 이 탑에서 북쪽 약 30m 지점이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감문국시대의 장부인능이 있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변에 일휘문 암막새기와 조각을 비롯한 고려시대 와편, 조선시대 자기편이 산재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조선시대 중기까지 존속된 것으로 추측된다. 기단, 상륜부, 3층부의 각 부재는 없어지고 초층,중층의 부재만 남아 있다. 초층 옥개석은 위에 2단의 괴임이 있고 낙수면의 반전은 심하지 않으며, 옥개석 두께는 얇고 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어 전형적인 3층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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